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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부르심을 받아 살아간 최
양업의 삶은 14년간의 유학 생활과
11년 6개월간의 사목생활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을 관통하
는 첫 단어가 있다면 아마도 성실
(誠實)
일 것입니다. 중용
(中
庸)
에는 “성
(誠)
은 하늘의 도
(道)
이고, 성실하려는 노력은 이
는 사람의 도”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실
한 자가 바로 성인
(聖人)
이요, 성실하고자 노력하는 이는 선
(善)
을 택하여 굳게 잡고 있다는 대목으로 이어집니다. “정
성 성
(誠)
”은 말씀
(言)
이 사람이 되시어
(成)
우리 가운데 성실
하게
(誠)
사셨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최
양업 신부님은 14년간을 성실하게 복음의 가르침을 머금
고
(言)
이 땅에 돌아오셔서 몸소 성실한 사목을 이루어갔다
고
(成)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11년 6개월 동안 선
한 업적
(良業)
을 쌓아가며 정성스럽게
(誠)
양들을 돌보시다
가 선종하셨습니다.
1850년 고국에 돌아온 최양업 신부님은 첫해 6개월 동
안 3,815명의 교우들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산길 교우촌
을 초행길로 다니셨을테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요? 그다
음 해에는 5,936명을 방문하셨다는데, 그 수는 전체 조선
신자 수의 반이 넘습니다. 때로는 3~4명의 신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틀, 사흘을 걸어가 성사를 주고 오시기도 했습니
다. 당시 영세자의 과반수는 최양업 신부님 관할 지역에서
나왔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신부님은 해마다 9~10월경에 스승 신부님께 편지를 보
내어그해에있었던사목활동과신자들과의체험을보고했
습니다. 이를통해박해를피해산속교우촌에서가난에찌
들어 사는 신자들, 양반제도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핍박을
받고 있던 천주교 신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온 신입교우들의 이야기를 전
해주고 계십니다. 그분의 성실함은 사목 방문을 마치고 잠
시쉬는여름에도계속됩니다. 쉬는시간동안다블뤼주교
님께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여 드리고, 기도서와
교리서의 한글 번역을 도와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완성
된 서적이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와 교리서인 「성교요리
문답」입니다. 그래서최양업신부님이갑자기선종했을때,
선교사들은모두다블뤼주교님의오른팔이사라졌다고할
정도였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또한 조선 신학생들을 선
발해서페낭신학교스승신부님들께보내면서그들에게겸
손과회개를가르쳐주시도록청하였습니다. 또한한글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천주가사’를 지어 구전
으로교리를배울수있도록이끌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지상에서 성실한 사목생활을 마무리한 최양업
신부님은 당신이 지으신 ‘사향가’의 가사처럼 천국 본향을
향해 떠나셨습니다.
“
어화 벗님네야,
우리본향 찾아가세.
동서남북 사해팔방 어느곳이 본향인고 …
인간영복 다얻어도 죽어지면 헛것이오.
세상고난 다받아도 죽어지면 없으리라 …
아마도 우리락토
천당밖에 다시없네.
”
조한건
프란치스코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성실한사제최양업
올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이자 김대건 신부님이 유네스코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된 의미 있는 해입
니다. 희년을 지내는 동안, 하느님을 사랑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같은 해에 태어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모범을 본받아 두 분의 영성을 우리 삶에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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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대건·최양업 신부님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