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7월 11일
3
말씀
의
이삭
마음을다하고, 목숨을다하고,
힘을다하여
류지현
안나
아나운서, 커뮤니케이션전문가
요즘 주보에 글을 쓰면서 아버지의 빈자리가 많이 생각
납니다. 아버지가 황급히 하늘나라로 떠나신 건 7년 전 주
님 승천 대축일, 이후 매년 5~6월이 되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더욱더깊은가슴앓이로찾아옵니다.
아버지의 흔적이 남은 방에는 서랍마다 수년간의 매일
미사 책과 주보, 그리고 신문에서 매일 스크랩하신 3개 국
어학습노트수십권이있습니다. 성체를귀하게영하셨던
아버지가 몇 번의 수술 이후엔 평일 미사를 집에서 대체하
시며미사책이필독서로쌓여갔습니다. 여러해전의사고
가몇차례수술의원인이됐을것이라고늘미안한마음을
갖습니다.
어느 해의 12월 31일, 송년 생방송 진행을 위해 늦은 밤
에집을나서는딸이안쓰러우셨던지아버지가동행하셨습
니다. 장시간 추운 야외 일정에 대비해 보신각 근처 한 건
물 2층에 들렀다가, 한복을 입고 어렵게 어두운 층계를 내
려오는 딸만 조심스럽게 챙기시던 아버지가 얼어 있던 계
단에서 미끄러지셨습니다. 뼈가 부러져 꼼짝 못 하시는 아
버지와 다가오는 방송 시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딸에게 아
버지는 “염려 말라.”고 애써 미소를 보이셨고, 어서 가라
손짓하시는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저는 현장으로 무거운 발
걸음을옮겼습니다. 방송후연락해보니, 아버지는병원에
실려가서도혹시딸이걱정가득한모습은아닐지 TV에서
눈을떼지못하시다가저의미소띤얼굴을보고나서야안
심하고치료를받으셨다고합니다.
아버지는 1년가량 깁스로 고생하시면서도 염려하는 딸
의 마음을 헤아려 단 한 번도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셨습니
다. 그렇게 배려와 진한 사랑을 남기신 아버지는 늘 ‘성령
의 인도하심, 예비하심’을 믿고 사셨고, 자녀들이 실패나
어려움에 직면할 때면 “주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이끌려고
하신다.”고 희망을 주셨습니다. 좋은 일은 ‘주님의 안배하
심으로….’가아버지사고의중심이었습니다.
그런 말씀들이 현실감 없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모든 걸 너무 신앙적으로 받아들이셔서 손해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버지를 추억하며 그
신앙의 의미를 이제 조금씩 느낍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
로얼마나많은순간더나쁜선택을하지않았고, 더큰위
험에처할위기에서구제되었고, 더깊은절망에빠질고난
에서일어섰는지. 걸어온모든길이주님뜻이었음을. 지금
이 지면으로 나의 작은 신앙 체험을 나누라는 부르심까지
도모두성령의인도하심과예비하심임을.
그래서 저 또한 아버지에게서 새겨진 그 신앙의 뿌리를
자녀들에게 대물림하게 됩니다. 저의 시아버지께서 삶의
지표로 삼으시는 신명기 6장 5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자녀
들에게인생의선물로전합니다.
나를이끄는
성경구절
이은영
살로메
수원교구분당성마태오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