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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대건·최양업 신부님탄생
“그럼나는도대체누구지?”
안소니는 이렇게 말하며 흐느낍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있는지알지못합니다. 그동안수없이쓰고불렀던,
팔십 평생 삶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안소니’라는 이름조차
처음들어봅니다. “이름좋네.”
치매는 그의 현재와 과거의 시간들을 조금씩 앗아갑니
다. 그에따라시간위에새겨진기억들도하나둘잃어갑니
다. 그 느낌을 안소니는 “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작은 아기 잎사귀 하
나만 남아서 엄마를 찾습니다. “엄마가
보러오면좋을텐데, 엄마가보고싶어.”
기억은 한 인간의 실존이며, 역사입
니다. 철학자 존 페리는 기억은 곧 영혼
(불멸성)
이고, ‘나’를 ‘나’이게 하는 것
(동일성)
이라고 했습니다. 치매는 그것을 허물어
버립니다.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소중한
관계들을 지워버리고, 쌓아온 시간들을
증발시킵니다. 그 무참함에 저항이라도
하듯 안소니는 유난히 자신의 손목시계
에 집착하지만, 그것으로 잃어버린 기억
과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살
아남는 ‘영생’이 아니라, 육신은 살아있지만 영혼이 사라져
가는소멸.
그것이 얼마나 두렵고, 외롭고, 힘들고, 혼란스럽고, 슬
픈지를 애잔하고, 날카롭고, 가슴 아프게 드러낸 영화 <더
파더>는 결코 별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85세가 넘으면 3명
중 1명, 65세만 넘어도 10명 중 1명은 안소니처럼 살고 있
거나, 살아야 하는 고령화 사회에서 그는 지금의 ‘나’ 또는
‘나의아버지’, 멀지않은미래의 ‘나’일수있기때문입니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치매를 앓는 사람의 모습과 행동
을. 그것을감당해야하는가족에게는얼마나큰고통과안
타까움을안겨주는지도. 그러나우리는알수없습니다. 정
작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의 절망과 불안, 외로움과 슬픔
을. 설령자신이당사자라고해도치매는그것들을 ‘기억’하
고이야기해줄수없게만드니까요.
올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사상 최고령
(84세)
남우주연상
을수상한노배우안소니홉킨스는스스로그주인공
(치매환
자)
이 되어 그것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모든 것이 이상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내
집에 낯선 남자가 주인처럼 행세합니다.
딸 앤
(올리비아 콜먼 분)
의 행동도 의심스럽
습니다. 앤의 여동생 루시의 그림이 벽
에 걸려있었는데 없어지고, 루시를 닮은
젊은 간병인 대신 다른 여자가 나타납니
다. 가구가 자꾸 없어지는가 하면, 집안
모습도바뀝니다.
그도 아주 잠깐씩 기억이 돌아오지만,
그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
가면서 착각과 환상에 빠져들고 몇 주 전
부터자신이요양원에와있다는것도모른채, “내가여기왜
있지?”하고딸을찾습니다. 어쩌면이렇게될수밖에없는현
실이싫고무서워스스로기억을버렸는지도모릅니다.
병원복도의자에혼자앉아있는안소니의막막한표정,
돌아오는차안에서의텅빈눈, 아버지를요양원에맡기고
나오는앤의젖은눈빛이좀처럼잊혀지지않습니다. 주님,
우리모두살아있는동안제가 ‘저’를기억하게하소서!
이대현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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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겸임교수, 영화평론가
영화칼럼
2020년감독_플로리안젤러
더파더
기억하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