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ƾ
ٱ ؽ
말씀
의
이삭
주님과아버지
유용
베네딕토
| 서울시의원
이젠 제 아들이 훌쩍 커버려서 저보다 어깨도 넓고, 키
도더큽니다. 든든하면서도약간은대하기어려울때도있
습니다. 저는성당친구들도많고사회생활중만나는사람
도 많지만, 요사이엔 아들들하고 술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아들들 사는 이야기도 듣고 싶고, 이것저것 궁
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들, 한잔할까?” 하면, “다음에
하시죠.”라는 답이 옵니다. 훌쩍 커버린 아들에게 서운하
면서도 머쓱해진 마음으로 ‘다음에 하지, 뭐.’ 하고 스스로
를다독이는데, 갑자기돌아가신아버지생각이났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애주가이기는 하셨지만, 너무도 엄하
게 느껴지던 분이시라, 술자리를 감히 부탁드릴 수가 없었
습니다. 함께여행한번가시자고말씀드려본적도없습니
다. ‘한번도그런말씀을드려본적이없구나….’ 저에게는
너무 엄한 분이시라, 무서워서 말씀드리질 못한 것이었는
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께서 혹시 그 말을 기다리셨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언
제든지 좋으니, 한잔하자.’며 기다리셨을 것도 같습니다.
맡은 일들로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도 아들의 “아빠 한잔하
실까요?” 하는말이듣고싶은아비가되고나서야, 아버지
의 마음이 헤아려집니다. 제 아버지께서도 제가 “한잔하시
죠.”라고 말해주길 기다리지 않으셨을까, 얼마나 기다리셨
을까싶은생각에눈물이핑돕니다.
제가 성당에 나가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께서는
펄쩍 뛰셨습니다. 집안 제례를 망친다고 하시며 장손은 아
무 종교도 갖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죠. 그러던 아버지께서
당뇨에 시달리시며 하루하루를 견디시다가 마지막엔 “그
래도 성당은 다른 종교랑 다르지.” 하시며 대세를 받으셨
습니다. 병환이깊어져아무것도기억을못하게되셨을때
도 “내 세례명은 요셉이야.” 하시던 아버지가 기억납니다.
제게 “네가일을직접하면한몫이요, 일을잘배분해서시
키면 열 몫도, 백 몫도 할 수 있다. 평소에 누가 그 일에 적
합하고 잘하는지 잘 알고 있어야 일을 맡길 수 있다.”고 가
르치시던 아버지께서는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엄
하게만 느껴지던 아버지인데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생
각이 납니다. 아들과 나누는 술 한잔이 아쉬워서 ‘이놈들이
언젠가 시간 내겠지.’ 하며 기다리면서도 아버지를 떠올립
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니, 하느님 아버지께
도 생각이 미칩니다. 사랑으로 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위태위태하게 길을 가는 저를, 얼마나 걱정하시며 돌보셨
을지를말입니다. 그긴시간동안시건방진저를다듬으시
고, 간혹 제가 방황할 때면 집 떠난 저를 기다리고 계셨을
하느님을 생각합니다. 이제야 저를 향한 하느님 마음이 조
금이나마 헤아려지며, 아버지이신 그분 사랑을 새삼 깨닫
습니다.
나를이끄는
성경구절
이희은
엘리사벳
도봉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