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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는 대농가
(大農家)
종갓집 8남매의 맏딸이십
니다. 자라면서 일을 너무 많이 하셨기에 “난 시집가서 딸
을 낳으면 절대 일은 시키지 않을 거야.” 하셨답니다. 다행
인지, 불행인지 그 딸도 일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선머
슴처럼 오빠를 따라다니며 딱지치기, 구슬치기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았던 그 딸이 수
녀원에 간다고 했을 때, 가족들과 친구들의 반응은 싸늘했
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수녀원은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해
야하고부지런해야하는데, 우리딸하고는거리가먼다른
세계의삶이라고하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인보성체수도회
(隣保聖體修道會)
에 입회를
했고, 4년의 교육 기간을 마치고 첫서원을 하고, 유기서원
기를거쳐, 종신서원을하였습니다. 세월은또그렇게흘러
‘첫서원 25주년’ 은경축을 끝낸 중년의 수녀가 되었고, 선
머슴 같았던 20대의 철없던 아가씨는 서울역 근처 후암동
에 ‘서울인보의집’을꾸리고 ‘쪽방이웃들의도시락’을만들
며, “얘들아! 밥 먹자!” 청소년 무료 식당을 운영하는 밥집
수녀가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도 위로가 되는 단어는 ‘어머
니’입니다. ‘어머니, 엄마’란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이 시리
도록 따스해지는 것은 자식을 향해 아낌없이 내어주셨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늘 안부를 묻는 것은 제가 아니라 어머
니이십니다. 같은서울하늘아래살고있으면서도, 바쁘다
는핑계를대며안부를여쭙는것에도무심하고, 인색한수
녀 딸에게 ‘아픈 곳은 없는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어머
니께서는전화를주시고, 문자를주십니다. 어릴적학교에
갈 때,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주셨던 기억 저편의
어머니를 떠올려봅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한결같으셨습니다. 90세를 향해 달려가는 어
머니께서는 쌈짓돈을 모아 지천명을 훌쩍 넘긴 딸에게 ‘홍
삼’을 다려서 팩에 담아 보내주십니다. 당신의 건강보다는
수녀 딸의 건강을 먼저 챙기십니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
지않고키웠던딸이엄마보다더많은일을한다며무척이
나안쓰러워하십니다.
곱디고운 얼굴은 주름이 가득하고, 백발이 되어버린 어
머니께서는 여전히 당신보다는 식당일을 하는 수녀 딸의
건강이 걱정되시는가 봅니다. 친구분들이 하나밖에 없는
딸을 어떻게 수녀원에 보냈냐고 하실 때마다, “너무 예쁘
게 키워서 인간에게 주는 것이 아까워, 하느님께 봉헌하셨
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눈물 나도록 고마우신 내 어머니,
곱고 예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저를
봉헌해주셔서감사합니다.
말씀
의
이삭
사랑은내리사랑
나를이끄는
성경구절
김여종
피아
고덕동성당
홍미라
루치아수녀
인보성체수도회서울인보의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