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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대건·최양업 신부님탄생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많고,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그

때마다우리는 ‘용서’란말을되뇝니다. 기도중에도빼놓지

않지요. 용서는 주님의 소중한 가르침이니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면

서죽음앞에서도그것을실천하셨습니다.

그 용서가 쉽지 않습니다. 일흔 번은 고사하고, 일곱 번

도 말입니다. 입으로는 용서를 말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상처와억울함, 분노와미움에사로잡혀있곤합니다. 용서

가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조건

을 붙입니다. “당신이 뉘우치고, 사죄한다

면.”

그러니어떻게조금의죄의식도없고, 후

회도 하지 않는 사람까지 용서할 수 있겠습

니까. 복수가 훨씬 강렬하고 효과적이고 후

련하다고생각할수있습니다. ‘복수는내가

당한 만큼의 상처와 고통을 되돌려줌으로

써 후회와 반성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때

문에 복수심은 참회의 간절한 갈구의 표현

이다.’라고까지합리화할수도있죠.

<크루엘라>에서 크루엘라

(엠마 스톤 분)

는 그래서 복수에

당당합니다. 악을 응징하기 위해 악을 거리낌 없이 저지릅

니다. 그 대상이 친모

(親母)

여도 조금의 갈등이나 망설임이

없습니다. 양모

(養母)

의죽음에얽힌비밀을알고는 “나는착

한 크루엘라가 될 수 없다. 주님의 계획이 그렇다.”고 외치

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를 끝내고는 더 강력하

고당당한악녀로남습니다.

우리가영화에서만나는악은대부분섬뜩하고흉측하고

우울하고 어둡습니다. 악에 대한 두려움, 배타성, 부정적

심리를 반영한 것이지요. 이 영화에서 크루엘라의 친모인

남작 부인의 오만하고, 괴팍하고, 악랄한 모습이나 <배트

맨>에서캣우먼의기괴하고사악한이미지가그렇습니다.

그런데 크루엘라는 다릅니다. 빼어난 미모에 패션 디자

이너로서천재적인재능을가진매력적인존재로나타납니

다. 그런이미지가그녀의악에너그러움을갖게만듭니다.

게다가 영화의 화려한 시청각적 연출, 매끄러운 이야기의

흐름과 등장인물들의 유머 감각이 그녀의 복수에 대한 쾌

감을크게합니다.

원작인 <101마리달마시안>에등장한크

루엘라의 악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주

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면서 <크루엘라>는

그녀의 악이 ‘태생적’이라고 말합니다. 그

악을 억누르고 살려 했지만, 세상이 폭발하

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은 부끄

러워할 필요가 없으며, 어둠 속에 숨지 않

아도 된다는 논리로 이어지죠. 그리하여 악

이마치선인양행동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상처가 원인을 제공했다

하더라도악이선이될수는없습니다. 정의로운복수와선

을위한악도악이며, 더큰악을낳을뿐입니다. 우리모두

가서로착한사람으로살기를희망하는주님의계획에 “나

는착한크루엘라가될수없다.” 역시들어있지않습니다.

다음에 만나는 그녀는 자신의 내면의 악과 세상의 다른

악을 용서하고 치유하는 ‘에스텔라’이면 좋겠습니다. 머리

색깔이 전부 검은색으로 섬뜩하게 변하지 않기를 빕니다.

훨씬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나올 테니까요. 심

리학자 마이클 맥컬러프는 “용서 역시 진화된 인간의 본

성”이라고까지했습니다.

이대현

요나

|

국민대겸임교수, 영화평론가

영화칼럼

2021년감독_크레이그질레피

영화 ‘크루엘라’

복수는더큰악을낳을뿐